한국 천주교 100년만에 추기경을 2명 배출했다. 1900년대 초 남산쪽에서 바라본 명동성당 전경
1892년 명동성당 부지전경. 우측 2층 양옥 건물은 1890년에 완공된주교관(현재 사도회관)이며,좌측의 빈터는 명동성당의 부지로 서울 장안과 대궐까지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성당건축을 방해하는 토지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898년 명동성당이 완공되기 전의 마지막 종탑공사모습.
1900년대 초 명동성당 진입로 모습
1899년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신도들
1898년 축성식 직후 찍은 성직자들의 기념사진. /명동성당 자료
1950년대 6.25 이후 폐허가 된 충무로 일대와 명동성당
1898년 명동성당 계단공사.
1903년경 명동 입구에서 바라본 명동성당
1900년대 초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려고 대기중인 남자신도들
1899년 부활절 날 성당 우측 언덕에서 여인들이 입당준비를 하고 기도하고 있다. /명동성당 자료
1950년대 초의 명동성당 진입로 오솔길
명동대성당 종.
대성당의 종탑 공사가 끝난 1897년 7월 경 프랑스 선교사들은 기금을 모아 모국으로 종을 주문하였으며,이듬해 3월에는 종이 완성되어 조선으로 운송되었다.
1898년 5월 29일 뮈텔 주교는 대성당 축성식 당일 아침에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비서관의 부인 르페브르를 대부.대모로 하여 종을 축성하였다.
그 뒤 1960년대에 와서 이 종이 파손되자 제11대 본당 주임 이계중(요한) 신부가 자치 위원회를 중심으로 새 종을 만들어 종탑에 안치했다.
명동성당 내부 궁룡 천장 모습. /명동성당 자료
1988년 촬영 명동성당 전경. /명동성당 자료
초기 천주교회를 이끈 김범우(왼쪽)와 이벽.
/명동성당 100년(코리언북스) 책 자료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 한국 천주교회를 세운 이승훈. /명동성당 100년(코리언북스) 책 자료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1983년 문학진 작)
사진은 명례방집회.
교회창설 직후의 공동체 모습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회 신앙을 이끌었던 이벽.권일신 등이 김범우의 사가인 명례방(현 명동)에서 기도하고 있다.(1984년 김태 작) /명동성당 100년(코리언북스) 책 자료